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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들의 여행

겨울 유럽여행 17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야경

팔공산 2022-06-11
1.

카페 플로리안에서 먹은 샌드위치는 내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 모자랐다. 아무래도 카페의 디저트용으로 나온 메뉴라 요기를 하기엔 부족한 양이었다.







뭔가로 이 허기를 달래고 싶었던 나는, 베네치아의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한 파니니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에 디스플레이된 샌드위치들은 정말 먹음직스러워보였고, 결국 나는 에그&살라미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샌드위치를 먹을 때면 늘 드는 생각. 샌드위치를 살 땐 그게 정말 맛있어 보여서 사는데, 막상 사서 먹을 땐 그 맛이 그렇게 평범할 수가 없다. 알면서 맨날 당한다. 특히 편의점에서 많이 당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직 '무진장 맛있는 샌드위치'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 (혹시나 싶어서 지금 블로그에서 '샌드위치' 키워드 넣고 돌려봤는데 칠레의 LAN 항공기에서 먹었던 샌드위치가 맛있었다고는 한다. 흠... 기억 안나. 여튼 뭐 그거 빼고 맛있는 샌드위치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음.)

뭘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어? 결론은 저 샌드위치가 늘 그래왔듯 평범한 맛을 가진 샌드위치였다는 거다.





2.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 뒤, 호텔 주변을 서성이며 산책했다.













그러다가 한 화방을 발견했다. 물감과 나이프, 붓, 팔레트, 스케치북, 그 외 이름 모를 많은 미술 도구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뭔가를 사서 그림을 그려볼까 싶어 구경했지만, 가격이 상상초월이라 그냥 관두고 엽서나 샀다.

고른 엽서엔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가 치마를 입고 춤추는 그림이었는데, 왠지 내 전 회사의 상사를 닮은 것 같았다. 그 상사, 완전 고양이상이었지. 이런 요망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왠지 열받아서 구입했다. 방에 걸어두고 볼 때마다 한 대씩 때려주겠어.

그래서 지금 내 책상 옆에 걸려있다. 처음엔 볼 때마다 손가락으로 엽서를 튕기며 내 안의 쪼잔함과 소심함을 자랑했었는데, 이젠 정이 들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정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3.

산책을 하다가, 혹시 객실 준비가 됐나 싶어서 호텔에 들렀다. 다행히 내 방 청소가 끝나 들어갈 수 있단다. 그래서 체크인을 한 뒤, 전 포스팅에서처럼 객실에 좀 놀라고, 화장실에 좀 놀라고, 좀 놀란 뒤, 목욕을 즐기다가 잠들었다.

눈을 뜨니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겨울 유럽의 낮이 짧다지만, 그래도 벌써 이렇게 됐을 줄은. 나는 꿈틀거리다가, 다시 한 번 목욕을 하며 정신을 맑게 한 뒤,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보기 위해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이 뒤로는 아이쇼핑과 리얼쇼핑을 즐기며 사진을 잔뜩 찍었다. 그 사진들 잔뜩 올릴테니 스압 주의.







산 마르코 광장의 포르티코에 눈 내리는 듯한 조명을 주렁주렁 달아놨다.

그 땐 디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괜찮군.





어둑어둑한 산 마르코 광장.





아직도 줄이 긴 산 마르코 대성당. 뒤로 두칼레 궁전이 보임.

저번 여행 때 저 줄을 이기고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에 들어갔었는데 굉장히 화려했던 걸로 기억함.





산 죠르죠 마죠레 섬.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이 구도로 새벽에 해운 낀 베네치아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디게 신비롭고 아름다웠었다.





이 날 유일하게 피아노 생음악이 울려퍼졌던 카페.

광장 안쪽이 아니라 두깔레 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카페였음.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문을 일찍 닫아서 못가봄.





실은 산 마르코 광장만 둘러보려고 나온 거였는데 급 뭔가에 홀린 듯 걷기 시작함.





우와 이 불빛은 뭐야... 따라가보자...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가면 디핑 넘나 이쁜 것...





고양이 귀여움. 과연 고양이의 도시.





갖고싶다. 진짜 갖고 싶은 마리오네트 인형. 비싸서 못샀지만.





곤돌라 미니어처 귀여워어어!





이거 디게 사고 싶었는데 고민 플러스 고민하다가 결국 못삼. 다음에 가면 꼭 사야지.





이것도 디게 사고 싶었는데 후략.





딱 한 번만 입어보고 싶다.





먹을 꺼.





초코초코.





달콤달콤.





누구랑 같이 왔으면 저거 사달라고 떼썼을 광경.





그러나 난 혼자니까 그런 거 없고 추적추적 걸어감.







가면이랑 마리오네뜨 디핑 왤케 이쁜거야 진짜 ㅠㅠ

특히 저 드레스 입은 고양이 마리오네뜨 진짜 사고 싶다.





어느새 여기까지 옴. 예전에 여기서 가발 쓴 연주자들의 공연 봤었다.

공연의 질은 그저 그랬는데... 어떠려나 요새는?





정신을 차리니 벌써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에서 본 야경인데 겁나 이쁨. 근데 겁나 흔들림. 사진 겁나 못찍네예.





하얗게 빛나니까 넘나 예쁜 것. 정말 고고한 다리로군.





리알토 다리를 건너 쭉쭉 가본다. 파스타를 파는 가게.





귀족의 영애가 가지고 있을 법한 인형.





맛있어 보이는 피자집 발견. 여기서 급 배고파졌다. 그래서 피자 등등을 사서 다시 왔던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감.

생각보다 멀리 나와서 돌아가는데 힘들었다... 아까 올 땐 이렇게 멀리 나온 줄 몰랐는데...





4.

다리를 두드려가며 호텔로 돌아왔다.

이렇게 많이 걸으려고 한 거 아니었는데 베네치아에 홀리는 바람에 많이 걸어버렸다. 정말 사람 홀리게 만드는데 뭐 있는 도시다. 빨리 피자 해치우고 목욕으로 이 피로를 풀어야지.





객실로 돌아오니 하우스키퍼가 다녀갔는지 정리가 되어있었다. 이 좁은 객실도 정리할 건덕지가 있었다니 왠지 귀여웠다. 초콜릿은 두 개나 줬네. 혼자니까 외롭지 말라고 두 개나 준 건가. 고마워라.

깨끗해진 객실에 행복해하며 짐을 풀고, 돌아다니며 구입했던 다양한 음식(피자, 샐러드, 감자, 음료수 등등)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

그러고보니 베네치아에선 레스토랑에 간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맨날 이렇게 포장 음식류를 사서 호텔이나 게하에서 먹었던 것 같다. 전에 친구랑 왔을 땐 돈이 없었고, 그 전에 혼자 왔을 때도 돈이 없었고, 지금은 왠지 혼자 먹을 자신이 없고.

다른 데선 혼자 잘도 먹고 다니는데 왠지 베네치아에선 자신이 없다. 밥 혼자 먹으면 괜히 울적해질 것만 같다. 그런 도시잖아. 다음엔 원 남친하고 오던가 해야겠군.





5.

아까 돌아다니면서 옷도 세 벌이나 샀다. 캐리어 작은 거 들고 와서 넣을 곳 없는데 괜찮은 옷이 8유로라잖아. 그럼 사야지.

가디건 1개, 스웨터 1개, 흐느적거리는 티 1개를 샀다. 추운 북쪽에선 스웨터를 잘 입고 다녔고, 가디건과 티는 따뜻한 로마에서 잘 입고 다녔다. 아이 좋아라.

그 가게에서 어떤 손님이 옷을 옷걸이에서 다 꺼내보고 여기저기 펼쳐놓고 나가버려서, 직원 언니가 슬퍼하며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쌍해서 그 손님 욕하면서 같이 옷 정리를 해줬더니, 직원 언니가 무진장 고마워했다.

그러더니 그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는지, 자기가 깎아주고 싶은데 사장님한테 혼나서 그럴수가 없단다. 아니 뭐... 괜찮아. 어차피 한 벌에 8유로밖에 안하고. 이 가격에서 더 깎아달라고 하면 양심에 찔려서 안된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헤죽거리며 웃곤 고맙다고 했다. 웃는 게 엄청 귀여운 언니였다.

...나보다 나이 어릴텐데 자꾸 언니라고 하네. 쩝.





6.

배부르게 먹고 목욕을 하며 인터넷 뉴스 따위를 보다가, 지금쯤이면 엄청 한산한 산 마르코 광장의 야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또 사진 잔뜩 찍었다. 스압 주의.





아무도 없다. 조용한 포르티코.





한적한 산 마르코 광장. 이거다 이거. 이걸 언제든 보려고 광장 근처에 호텔을 잡았지.





아쉬운 건 음악이 없다는 것.

텅 비어있는 무대와 야외석... 조용한 플로리안 카페.





두깔레 궁전 앞에 밝혀진 크리스마스 트리.





붙잡고 빙글빙글 돌고 싶은 가로등.

...실제로 빙글빙글 돌았음. 발랄하게 깡총깡총 뛰며.





조용한 베네치아와 나.

그 와중에 나이키 마크 너무 선명해서 신발 광고 같음.





산 마르코 대성당 옆의 사자. 낡아서 우는 것 같다.





산 마르코 대성당.









산 마르코 광장을 보며 다시 한 번 아침의 그 생각을 떠올렸다. 도대체가 너는 진짜 변하질 않는구나. 5년, 10년이란 시간이 네겐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아마 내가 살아있을 때까진 계속 이 모습 그대로겠지, 하고.

아침엔 그게 참 너무하고 치사하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인 즉 이 모습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는 거다. 여기 다시 오기만 하면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죽은 뒤는 또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 뒤는 관심 없다.

나는 산 마르코 광장의 기둥에 적당히 기대어 반짝거리는 많은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별 아쉬움 없이 일어섰다. 뭐, 괜찮잖아? 베네치아는 또 이렇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날 맞이해 줄 거다. 오늘은 추우니까 이만 들어가자고.

그럼 다음에 보자. 베네치아야.




...그렇게 쿨한척 해놓고 아침에 또 미련이 남아 발길을 차마 못떼다가 기차 시간에 늦을 뻔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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